[스크랩] 효과적인 새교우 정착 사역을 위한 출발점
효과적인 새교우 정착 사역을 위한 출발점
김덕수교수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첫 인상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교회와의 만남에서도 첫 인상이 중요하다. 그 첫인상의 장이 새교우 정착 사역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새교우들이 우리 교회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갖고, 잘 정착하여 신앙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1. 새교우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할 것이고, 2. 새교우 정착사역의 목표가 무엇이며, 3. 새교우 정착사역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세 가지 모두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먼저 새교우, 혹은 새신자들은 어떤 사람인가부터 알아보자.
교회에 나올 때 그들은 눈여겨보고 싶어하고, 교회에 기대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설교를 통해 나타나는 교리의 정확성과 좋은 양육 프로그램 등에도 관심이 있겠지만, 모든 새교우들이 공통적이면서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그 본성이 원하는 바는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아직 충분히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아는 길은, 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이다. 영적인 것을 볼 수 있기 전에 그들은 보이는 것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쉽고 또한 그 것이 자연스러운 지라, 성경은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에 처음 나왔을 때 그 사랑을 느끼고 경험하는 첫 번째 장이 새교우 사역이다.
그들이 갈구하는 사랑은 방문자와 이웃과 새신자들에 대한 배려를 통해 경험될 것이다. 그래서 주차장부터, 교회 입구, 안내위원 등은 물론 교회 로비,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방문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하며, 교회는 부동산 입장에서 볼 때 비싸고 아까운 1층에 새신자들을 위한 안내석, 서점, 카페, 도서관, 작은 갤러리 등을 배치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는 것이지 이런 것이 단순히 시대적 트렌드요 유행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기존 교인들의 시각에서 기존 교인들을 위한 시설과 운용뿐 아니라, 눈을 밖으로 돌려 불신 이웃과 구도자와 방문자와 새교우들에게 맞출 필요가 있다.
따라서 새교우 정착 사역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분위기를 주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새교우 환영위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담임목사부터 전성도의 말과 행동과 얼굴표정 그리고 교회의 행정과 시설까지 그렇게 조정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때 환영의 분위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과도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형식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진심으로 우러나는 것으로 보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교회들은 영접위원들에게 제복같은 것을 입히고 호텔 종업원처럼 혹은 유명 레스토랑 웨이터같은 깍듯이 대하는 영접 방식을 교육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새들백교회가 불신자들을 그토록 많이 교회로 끌어들인 것에는 주차장 곳곳에서부터 예배실에 이르는 계단 곳곳에 명찰 하나 달지 않고 평상복을 입은 채로 여기 저기서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손을 흔들고 악수하며 정말 자기 집에 방문한 손님을 향한 사랑의 환대를 느끼게 한 것도 한 몫 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와 문화가 다르다고 하겠지만, 새교우 환영 및 정착사역 담당자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담당 직무라서 하는 거라는 인상을 주는 것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환대 사이에서 우리는 저울질을 해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 교회에는 잘 훈련된 영접위원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줄 만큼 구별됨의 장점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 환영이 직업적으로 혹은 사무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혹은 교인들이 나같은 방문객에게 이처럼 관심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란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새신자 정착 사역에는 신학적인 요소와 함께 문화적인 요소가 함께 균형 잡아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50대 후반에서 60대에 이르는 기존 그리스도인이 이적해 올 것을 기대하는 교회라면 모더니티 사회의 특성만 알면 되고, 이 일에는 기성 목회자들도 문화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교회는 차츰 현재의 젊은이들이 청장년세력으로 부상해 들어올 것인데, 그들에 대한 새교우 사역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기성세대와 다른 앞으로 부상해 들어올 사람들의 특성은 무엇일까? 우선 몇 가지만 간단히 알아보자.
기성세대는 사실 현대성(Modernity)의 특성에서 살아오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종교개혁 이후 오늘날에 이르는 크리스텐덤 시대의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종교개혁 이래 문자 문화와 관련성 있는 교회를 만들어 왔다. 그들의 관심은 고도의 이성적 주석과 교리 체계인데, 그 문화적 근간은 계몽주의와 이성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논리적 설교와 체계적인 교육에 관심을 갖고 교회를 바라본다. 또한 그런 새교우들은 잘 짜여진 조직과 위계질서와 체계를 선호한다.
그러나 근래에 고개를 든 포스트모던 사회의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 속에서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형태에 변화를 일으킨 가운데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소리와 시각적 이미지와 체험이 중요하다. 따라서 모더니티 사회의 새교우들에게는 책자와 팜플렛이면 충분했지만, 후기 현대성부터 시작하여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새교우 영접실에 소리와 시각적 이미지가 잘 조화를 이룬 인테리어가 중요하고 교회 소개에도 동영상 등이 중요하게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모더니티의 특징인 질서추구와 성속의 영역 분리로 교회를 특징지어 보려는 시도는 더 이상 교회 소개와 정착 유도에 별로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다.
사실 전통에 대한 배격은 모더니티 사회에서도 중요한 특징으로 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나, 포스트모던 사회에는 사람들이 제도와 정당에 더 이상 확고한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회도 이제 소속 교단을 강조하고 교단의 명성에 의지하여 새교우 정착에 있어서 유입되어 들어오는 새교우들이 우리 교단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해 어떤 혜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 역시 점차 헛된 희망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현재 우리나라 기존 기독교인들은 모더니티 사회의 후반에서 포스트모던 사회로의 전환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 이야기는 새교우 정착 사역에 있어서 교단적 강조는 우리 목회자들만의 관심이고, 새교우들은 갈수록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란 말이다. 그들은 이 교회가 어떤 교회이며 어떤 점에서 좋고, 이 교회를 선택했을 때 목회자가 어떤 점에서 다른 교회 선택할 때보다 좋을지를 느끼게 해주는 방향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질 때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 자명하므로 주의 깊게 해야할 것이다.
새교우 사역을 논할 때, 우리는 새교우 정착 사역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영역이 있으며 각 영역에 따른 정착사역을 고려해야 한다.
1. 불신자들을 교회 교제에 소속시키기.
2. 불신자들의 거듭남을 통해 교회 내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가 되게 하기.
물론 이것은 2.1교회 밖 불신자들과 2.2 교회내 불신자들 두 영역의 대상들이 거듭남을 통한 하나님 백성됨을 추구하는 사역으로 더 세분될 수 있을 것이다.
3. 수평이동 교인 중 아직 거듭나지 않은 구도자들이 우리 교회의 교제권에 소속되게 하기.
이 사역은 또한 3.1 거듭나기 전이라도 교회 교제권에 소속되게 돕기, 3.2 거듭남을 통해 진정한 지역 공동체의 하나님 백성되기로 더 세분될 수 있다.
4. 수평이동 그리스도인들(거듭난)이 교회에 소속되게 돕기.
즉 새교우 정착 사역이라 할 때 새교우에는 불신자도 있고 교회에 정착하지 못해 방황하다가 온 수평이동 교인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 구도자라고 할 때는 불신자를 포함하여 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적이 있으나 아직 거듭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위의 1,2,3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언급한 것이다. 이미 강조했듯이 이 때 1-4 모두를 우리는 새교우 정착 사역의 대상으로 하나 1-3이 주류이어야 하고, 특히 우리의 관심은 우선적으로 위의 1,2번 불신자에 철저하게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 앞에서 다루었던 이야기와 새신자 정착 사역에서 문화와의 연관성을 강조한 것도 그것 때문이다. 특히 1번을 잘 하기 위해서 이 부분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앞으로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포스트모던 사회의 새교우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조금 더 살펴보자.
1. 제자도- 등록교인이 되는 것보다, 교리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그들은 일단 교회에 나오기로 한 이상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2. 변혁성- 그들은 교회에 다니기로 한 이상 이전에 자신들이 욕하던 기독교인들과 달리 자신은 물론 전통교회가 관심을 덜 가졌던 세속 영역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시도하고자 하며 그런 교회를 더 높이 평가할 것이다.
3. 공동체성- 모더니티 사회의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등록하고 자신의 유익에 맞는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깊이 개입되기를 꺼렸으나, 포스트모던 사회의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는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고도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동체 경험을 사모하고,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도되는 공동체성이 강한 교회를 원하는 특성을 보이게 될 것이다.
4. 선교적- 그들은 아직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기에 타종교에 대한 관용과 배려를 중시하고 위협적 선교를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낯선 이들을 영접하고 타문화에 대한 존중과 관심, 그리고 새문화를 경험해 보려는 열린 자세가 모더니티 사회 사람들보다 강하다. 따라서 성경적으로 잘만 이끌어주면 그들은 매우 선교적으로 효과적인 자원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이전보다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5. 사회봉사- 그들은 과거 그 어느 때의 사람들보다 넓은 마음으로 섬기고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보이는 삶을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비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봉사활동이 점차 중시되고 그런 사람들이 이전보다 늘어날 것이다. 그런 문화적 배경 가운데서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기에 새교우들은 그런 소외계층과 빈민과 약자에 대한 아낌없는 봉사가 있는 교회를 높이 평가할 것이고 자신들의 삶도 그 일에 이전보다 더 드리려고 할 것이다.
6. 창조성- 그들이 아직 거듭나지 않았든 거듭났든 관계없이, 그 어느 때보다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 창조적 삶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할 것이다. 이는 모더니티 사회 후반부터 급격히 그리고 더 강하게 나타난 특징으로, 예배와 교육과 교회 사역 모두가 진부하지 않고 항상 창조적이기를 원한다. 이 특성은 모더니티 사회 후반에 등장한 구도자에 민감한 교회들(새들백교회나 윌로우크릭교회 등)의 강점인데 앞으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이 부분이 더욱 중시될 것이다. 미국의 모자이크 교회 등이 대표적으로 창조성이 강조된 교회의 모본이다.
7. 참여적- 그들은 과거처럼 수동적으로 관망하다가 가버리는 태도에서 점차 참여자가 되고 영적으로도 생산자가 되기를 원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문화와 교육 특성상 미국 등 서구 사회에 비해 이 부분은 비교적 적게 나타나겠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해 교회의 일 혹은 교회의 결정사항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8. 고대성과 현대성의 영성적 융합- 이들은 모더니티 사회의 현대성(구도자 교회들이 보여준 사역 모습)과 고대 교회들의 신비로운 영성을 함께 공유하기 원한다. 더 이상 시끄럽고 정신없는 교회의 모습보다는 조용하고 깊은 영성이 넘치는 교회의 신비성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것을 빈티지 신앙(Vintage Faith)이라고 하며 오래된 미래( Ancient Future)라는 역설적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머징교회(Emerging Church)들이 이런 특성을 가진 포스트모던 젊은이들을 포용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그들은 신앙생활에서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와 합리성 못지않게 영적인 활동에 참여하기도 원한다. 그래서 관상적(Contemplative) 삶이 갈수록 교회 안에서 중시될 것이다. 이는 왜 과거 시끄러운 부흥회식 기도원보다 예수원 스타일의 수도원적 기도원에 사람들이 점차 관심을 더 갖게 되는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점들을 잘 이해하는 것이 갈수록 새교우 정착 사역에서 중요하게 될 것이다.
이제 제대로 된 새교우 정착 사역이 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점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첫째로 새교우정착 사역의 목적에 대한 신학적 출발점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셀사역이 교회성장의 수단이 아니라 원래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인 것처럼, 새신자 사역은 정착교인을 늘려 교회성장을 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공동체원이 되어 건강한 신앙생활을 잘 하게 도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함이어야 한다. 이는 선교 역시 단지 대위임령(대사명)에 순종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갈망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 때문이어야 한다는 존 스토트의 지적과 같은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둘째로 새교우 정착사역의 신앙생활 차원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전도의 목표가 사람들이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찬송이 일어나게 하는 예배(『건강한 목회를 통해 세워가는 건강한 교회』, 도서출판 대서. 329쪽)인 것처럼, 새신자 사역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배가 새신자 사역의 궁극적 목적이다. 다른 말로 해서 새신자 사역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기 위함인데, 이는 사실 거시적인 관점이다. 이것을 미시적으로 접근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의 그 구체적 표현이 어떻게 되느냐를 생각하여 좀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접근책을 논해야 할 것이다. 이는 새신자들이 우리 지역 공동체(교회)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고 예배자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때 그 예배자의 삶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는 뒷부분에서 두 차원으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셋째로 새교우 정착사역의 지역교회 차원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새교우 정착사역은 교인을 등록시키는 것이 아니라 교회원이 되게 하는 것이다. 즉 새교우 정착이란 교회에 정기적으로 습관적으로 다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가족으로 살게 하는 것이다.
새교우 정착을 교인이 되게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사는 것, 두 가지로 나뉜다고 보거나 혹은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으로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의 해결은 전도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어 살게 하는 것은 제자훈련이라고 보는 잘못된 이중적 관점 때문인데(이에 관한 구원론적 토의는 필자의 『건강한 목회를 통해 세워가는 건강한 교회』 338-340을 참조하라), 새교우 정착의 목표를 그들이 우리 교회 즉 지역 공동체를 통해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데 까지 해야 함을 의미한다.
넷째로 새교우 정착사역의 공동체적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현대 전도사역에 있어서 뿐 아니라 근본적인 한국교회의 문제 중 하나가 개인주의적 신앙전파와 죄인들의 특성인 자기중심성을 깨지 못하는 것임을 필자가 지적한 바가 있는데(앞의 책. 344-345쪽), 마찬가지로 현대의 우리 한국교회 새교우 정착 사역 역시 개교회주의와 개인주의적 신앙을 방치하는 선에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즉 목회자 입장에서 우리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이 지상목표가 되고, 교인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맞는 프로그램과 교회를 찾아서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 줄 수 있는 곳에 정착하게 돕는 것이 새교우 사역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새교우 정착 사역을 통해 교회를 찾은 이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자신의 위치를 보게 하고(하나님의 백성이란 의식), 또한 우리 교회 즉 지역교회의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게 하는 공동체성을 갖게 해야 한다. 공동체성을 갖게하는 새교우 정착사역을 개발하고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 때에 그들이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지역 교회 안에서 파당을 나누고,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깨는 한국교회의 지병이 없어질 것이다. 이는 현대 한국교회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가장 중요한 길은 우선 성경적인 전도 사역과 새교우 정착사역에 있다고 필자는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교우 정착 사역을 단지 등록카드 쓰게 하고, 등록하는 사람들에게 선물 증정하는 것이 정착 사역이라는 의식을 버려야 할 것이다. 바람직한 새교우 정착사역은 교회 방문자에게 교회안내책자, 복음전도지 나눠주고, 등록카드 나눠주고, 설교테이프와 목사 저서 나눠주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한다. 등록 첫 주에 같이 밥먹어주는 도우미 차원 이상의 사역이 되어야 한다. 또한 등록자를 교구사역자와 연결하여 등록 심방 1회를 하면 정착 사역을 다한 것처럼 보지 말라.
그럼 새교우 정착사역의 목표와 함께, 효과적인 새교우 정착사역이 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알아보자.
새신자들에게 우리 교회만이 좋은 교회이고 다른 교회는 문제가 많고 우리 교단만이 좋은 교단이고, 세상과는 접촉하지 말고 주7일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해야한다는 식으로 교회의 배타성을 통한 거룩함의 정신을 강조하던 방식의 새교우 사역에서, 이제는 우리 교회가 당신과 함께하고 있으므로 다원적 사회 속에서 당신은 신앙을 지킬 수 있을 것이고 오히려 얼마든지 그들에게 기독교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을것이라는 적응가능성을 보여주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이런 태도 속에서 포용성이 커지게 되는데, 새교우는 내가 이교도 출신이고 혹은 타교단 출신이지만 복음과 하나님 나라란 더 높고 넓은 차원에서 이 좋은 교회에 나도 받아들여질 수 있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목회적으로는 교회내의 생활 뿐 아니라 교회 안과 밖 모두에서 전인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이끌어줄 것임을 각인시키고 그런 프로그램을 교회는 개발해야 한다.
동시에 신뢰관계 형성이 중요하다. 첫 째는 목회자와의 신뢰관계 형성이고 둘째로는 성도들간의 신뢰관계 형성이 되는 목회를 해야 한다.
이 때 새교우로 정착하며 그들이 제자로서 자라갈수 있도록, 지속적 영적지도와 인도를 받을 수 있는 멘토를 갖게 해주는 과정을 교회는 개발해야 한다. 즉 지역 멘토 (셀리더, 목자 등)를 통한 지속적 돌봄의 장 속에 새교우가 들어가게 해야지, 교구목사나 심방전도사의 새신자 심방 1회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럼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새교우가 정착되었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필자가 한동안 사역한 적이 있던 한 초대형 교회에서는 개척 초기부터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교구목사 전도사님들이 애를 먹었었다. 대형교회의 특성상 새로운 사람이 와도 누가 누구인지 몰라서 새교우인지 파악도 안되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해마다 1-2월이 되면 대형교회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신이 없는데, 어느 해 연초의 새교우 환영만찬에서였다. 어떻게 우리 교회를 선택하게 되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여러 사람들이 사실 자신들은 그 지역으로 이사 와서 이 교회에 등록하기 전에 열 군데 이상의 교회를 다녀봤으며 그 중 이 교회가 마음에 들어 주일예배에 출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비록 정기적으로 출석은 했지만 등록하지 않고 1년 가까이 다니다가 이번에야 마음을 잡고 등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럼 그 많은 교회들 중에 우리 교회가 마음에 들어 출석을 했다며 왜 1년이 되도록 등록을 하지 않았냐고 묻자. 설교도 좋고 교육도 시설도 프로그램들도 다 좋은데, ‘우리교회’라는 생각이 안든다는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말씀과 예배와 모든 것이 좋아도 우리 교회 우리 목사님이라는 의식이 안드는 교회! 그것을 극복하고 정말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가족이 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지 교회의 성장에만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한 사건이었다. 그것이 필자가 그 교회를 셀교회로의 전환을 제안했던 동기였고, 당시에는 국내 최초의 셀사역 모델교회가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했던 계기였다.
이제 새교우 정착이 잘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그것은 다음 2가지가 병행되는 것이어야 한다.
1. 지역교회의 교제권 속에 소속되게 돕기.
새교우 정착이란 것은 단지 교회 등록(등록교인화)이 아니라, 단지 주일예배에 출석을 잘 하게 하는 것(주일성수화)이 아니라, 교회의 교제권 속에 들어와 소속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목회적으로는 관계성(relationship)이 형성되는 것이며, 사회학적으로는 교인들과 연결성(connection)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소속감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교회의 등록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과의 관계성을 형성하고 내적 교제권 속에 개입된 것까지 의미해야 한다. 그래서 새교우 정착 사역이 단지 잘 꾸며진 새교우 영접실로 방문객을 모셔와서 교회 안내책자 나눠주고 등록카드 쓰게 해서 연락처 받고 사진찍고 선물이나 안겨주고는 우리의 새교우 정착사역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고 착각하여 자 도취에 빠져서는 안된다.
이 일을 위해서는 새교우 정착 사역이 반드시 셀그룹 등 소그룹 사역(전통 교회에서는 구역사역)과 연계되어 있어야 한다. 작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전체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정착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한국 문화에서는 한 집안 사람, 식구가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게 돕기.
둘째로는 교회의 교제권 안에 들어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들이 거듭나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우리 교회원들과 영적으로 한 몸을 이룰 때 정착이 되었다고 보는 높은 관점을 가져야 한다.
즉 지역교회의 교제권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새교우 정착의 첫 단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현재 교회는 조직적으로 접근되고, 행정적으로 움직이는 기관이 되어버려서 새교우 영접위원회는 등록과 안내만 하고 나면 임무가 완료된 것으로 보고, 그가 거듭나든 말든 구역이나 셀그룹 등에 참석하든 말든 어떤 교육을 받고 있든 말든 이런 것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임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지극히 행정적이며 ‘몸’차원의 교회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성경적으로 정상적인 교회라면 이런 식의 행정기능적 조직이 아니라, 서로 상합하고 연락하여 통합적으로 움직이는 새교우 정착사역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새교우가 오면 훈련된 멘토들이 몇 명씩 담당을 하여 새교우가 교제권에 들어가도록 돕고,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뿐 아니라, 복음을 듣고 거듭나서 세례(침례)를 받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 교육을 받아 자라가고 있는지 확인하며 새로운 멘토 (대개 셀그룹의 셀리더, 목자 혹은 새로운 관점에서 잘 훈련된 구역장들)와 함께 신앙생활을 잘 해나가게 일정기간에 걸쳐 돌봐 줘야 한다. 이를 위해 새교우 정착 사역팀은 전도사역팀, 목양사역팀(셀사역, 교구 사역등)과 교육훈련팀(교육,제자훈련사역 등)과 은사발견및 사역배치팀 등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움직이는 구조를 교회가 갖는 것이 중요하다. 새교우정착사역팀은 독자적으로 홀로 사역하는 팀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일단 교회의 교제권으로 들어온 새교우는 거듭나고 계속 자라가며, 그 과정에서 교우들에게 돌봄을 입고, 또 다른 후배 새교우들을 돌보는 삶으로 인도되어야 한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형이상학적 신학으로만 말할 것이 아니라, 단순히 섬김을 받고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새교우 정착 사역은 1. 새생명을 얻게 하고, 2. 새 관계성 속에 들어가며, 헌신과 희생의 정신에 기초한 섬김과 사역을 통해 3. 새 삶을 형성하는 세단계가 일원적으로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란 말이다.
이런 일이 제대로 일어나도록 하는 교회 내에는 사실 내부적으로는 두 단계의 등록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새교우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스스로 교인 등록을 하는 단계가 있다. 즉 새교우가 자발적으로 등록카드를 작성해서 냈기에 자신이 우리 교회의 등록교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교회는 그것을 인정해주되 그것은 단지 교회의 준회원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 정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에서는 이러 이러한 것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새교우 환영만찬 같은 편하고 부드러운 자리에서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즉 복음에 대해 다루는 단기적인 교육을 통해 당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우리는 기대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주일 예배 참석만이 아니라 목장(셀그룹) 등 소그룹에 소속되고 참여할 때에 우리는 당신을 정교인으로 여겨 교회의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본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이는 교회 일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교인이 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언약관계에 들어가는 것으로 여기에는 특권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헌신과 책임이 따르는 것임을 가르치고 일깨워주는 것이다. 지구촌교회 등도 이처럼 등록교인과 정교인을 구분하여 더 깊은 차원의 새교우 정착을 추구하는데, 그 교회는 특히 목장모임에 참여할 때에 정교인으로 인정된다. 이처럼 준교인과 정교인이 되는 것이 다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고, 또한 주일예배라는 대그룹 참여뿐 아니라 목장이나 셀그룹 같은 소그룹에 참여할 때 그들이 정착된 것으로 봐야 한다.
사실 위원회 방식의 새교우정착사역은 여러 면에서 한계가 있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바로 셀그룹 등 소그룹사역이다. 이는 여기서 다룰 제한된 한계를 넘는 것이므로 다 언급할 수 없지만, 담임목회자들은 소그룹사역과 잘 연계된 새교우 정착 사역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개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언약관계에 근거한 강력한 새교우정착 모델은 미국의 세이비어교회의 공동체 모델에서 실제적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교회는 근본적인 교회관의 이상이 드높아 대부분의 한국교회에서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한 차원 높은 새교우정착 사역에 힌트를 많이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쪼록 새교우정착 사역이 다른 교회 다니던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많이 등록해서 잘 정착하여 교회가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서, 불신자들이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몸의 일원이 되어 신약성경이 꿈꾸던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