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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님의 가상칠언(架上七言) - (펌글)

문영은 2016. 2. 19. 07:10

 

예수님의 고난주간 동영상

  

  

아래의 글은 펌글입니다

성(聖)금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시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가상칠언(架上七言)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내고 있다. 이때 우리는 사순절을 습관적인 말과 머리로만 아는 종교인에 머물러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구속(救贖)을 깊이 묵상하며 그 은혜에 깊이 젖어 복음의 감격을 외쳐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운명하실 때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마지막 일곱 마디 말씀을 살펴볼 것이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이 말씀은 전혀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을 향한 우리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것은 자기를 못 박은 로마 군병들을 위해, 더 나아가서 자기를 죽음으로 내몬 유대 종교지도자들까지도 위한 기도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0,19).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이 말씀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만난 강도가 회개하고 십자가 건너 다가오는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라고 했던 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강도를 예수님은 은혜로 구원하셨다. 우리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회개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풍성한 긍휼의 주님이시다.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7)

26절은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이고, 27절은 사랑하는 제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혹독한 육체적 고통과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 영혼의 고뇌를 겪는 와중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고 어머니의 앞날을 예비해 주셨다.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눅2:35)라고 말한 시므온의 예언과 같이 예수님의 비참한 죽음은 모친 마리아의 마음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주었지만 예수님의 따뜻한 배려의 말씀은 모친 마리아에게 깊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상의 세 마디 말씀은 밝은 아침나절 오전에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이제 정오가 되면서 3 시간 동안 온 땅에 어두움이 뒤덮였으며, 이때 예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리고 어두움이 걷힌 오후 3시에 예수님께서 네 번째 말씀을 장엄하게 외치셨다.


4.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마27:46, 막15:34)

이 말씀은 시편22:1의 아람어 표현이다. 시편22편은 곤경에 처한 의인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2~18),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며(19~21) 마침내 구원을 확신하고 미리 감사하며(22~26) 열방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내다보는 말씀(27~31)의 시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시편의 말씀을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아람어로 외치셨다. 하나님께 조차 버림받은 것 같은 고독감 속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깊은 신뢰감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고통과 영혼의 고독 속에서도 만왕의 왕으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실 승리의 영광을 내다보셨던 것이다.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이 말씀은 오후 4시 가까이에 하신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신 유일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마취시켜 주는 ‘몰약(沒藥)을 탄 포도주’를 거부하셨고(막15:23), 맑은 정신으로 임종하고자 하셨으므로 타는 목과 입술을 축이기 위해 신 포도주만 받아 마시셨다. 우리 예수님은 영혼의 고독과 인간적 수치 뿐 아니라 최악의 육체적 고통의 죽음을 당하셔야만 했다. 굵은 대못을 박아 경련을 일으키는 팔과 숨을 내쉴 수 없이 육중한 쇠 덩어리처럼 짓눌리는 심장, 조금이라도 숨을 내쉬기 위해 발목에 박힌 못을 받침으로 하여 몸을 밀어 올려야 하는 끔찍한 고통, 극심한 탈수로 기진맥진한 몸의 고통을 참아 가며 하신 말씀이다.


6. “다 이루었다”(요19:30)

(1) 이 말씀은 신 포도주를 받아 마신 후 예수님께서 하심 말씀으로 ‘테텔레스타이’라는 헬라어 한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은 ‘완성하다’라는 뜻의 ‘텔레오’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이며, 상인들이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 상거래가 끝났을 때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함으로써 거래의 종결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리고 화가들이 그림을 완성하는 마지막 붓 칠을 끝내고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함으로써 작품의 완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2) ‘테텔레스타이’, 이 말씀은 허무하게 죽어가는 실패자의 절규가 아니라 사명을 완수하고, 구약 성경의 모든 예언과 예표들을 성취하고,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린 승리자의 당당한 선언이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분”(히10:12)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신다.

‘테텔레스타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의, 즉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를 완성하셨음을 나타내는 ‘예수님의 위대한 선언’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대가를 예수님께서 치룬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엡2:8~9).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義)는 예수님께서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임을 증명한다(히12:2).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이 말씀은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저녁 기도로 드렸던 시31:5의 인용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임종의 순간에 그 영혼을 예수 안에서 아버지 손에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집사도 순교하기 직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7:59)라고 기도하였다.


이 모든 일의 진행을 지켜본 사형 집행관이었던 로마 백부장은 심히 두려워하면서 예수님을 일컬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27:54)라고 하였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말씀을 시작할 때도, 말씀을 마치실 때도 아버지를 부르셨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참 자유를 주셨다. 이제 우리는 이 놀라운 자유, 이 놀라운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감격의 찬양을 올려야 할 것이다. 할렐루야!

 

출처 : Glory Of God
글쓴이 : 늘 새롭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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