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여유 II

문영은 2017. 5. 5. 18:03

모처럼 아들녀석 제안으로 라켓을 들고 코트에 나섰다.

 막 태양이 달아 있을 때라 지열도 치솟아 숨이 막힌다.

 비지땀을 흘리며 열심히 공을 쫓아다닌다.

 레슨도 두어 달 받았고, 학점도 신청했던 터라 조금 자신이 붙은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도 경지엔 멀기만 하다.

 깡마른 꺽다리 키에 새파란 살결에 눈빛만 반짝거린다.

 갈증을 삼키며 부자가 함께 열심히 뛰다 마신 시원한 냉수의 맛은 참으로 일미이다.

 쉬는 짬에 말문은 부담 없이 열린다.

 물어 보면 꼭 필요한 대답만 하더니만, 또 한마디나 거들라치면 또 괜히 잔소리 하는가 하며, 빠질 연구만 하더니만.

 삶의 얘기와 운동의 얘기를 두루 섞어 터 놓는다.

 이성에 관한 얘기도 또 학습진도에 관한 얘기도 스스럼 없었다.

 테니스를 잘하는 법가 삶을 지혜롭게 사는 법이 같음을 느낀다.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해서는 네 가지 법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공을 잘 보아야 한다. (Looking)

움직이는 공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특히 공의 회전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바운드 이후에 움직이는 모양도 바로 보아야 한다.

 둘째는 라켓에 닿는 순간의 각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 (Angling)

길게 밀어 줄 것인가? 짧게 잘라 줄 것인가? 하는 등의 대처방안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힘이 있어야 한다. (Powering)

 힘이 없으면 밀리게 되고 밀리면 방향이 또한 달라진다. 따라서 힘은 기선을 잡고 갈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집념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

 넷째는 여유를 지녀야 한다. (Reserving)

 준비된 자세와 마음의 여유는 맥을 같이 한다. 여유가 없으면 불안하고 실패할 확률이 크다. 급한 너머지 볼상사나운 모습의 연출이 따르기 마련이다.

 삶의 모습과 비교해 본다.

 삶의 문제점을 공이라고 가정해 본다. 문제가 달려오는데 잘 관찰된 문제는 이미 문제가 아니며, 문제라 해도 대처할 수 있기 마련이다.

 대처방안이 서면 문제는 목표한 것처럼 적의하게 처리해 낼 수 있지 않은가.

 또한 힘이 있을 땐 문제에 밀리지 않고 멋있게 고고한 삶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은지.

 여유를 가질 때 비로소 원숙한 삶의 경지에 이르지 않을는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통하여, 삶의 고통을 통해 여유를 얻게 되는지.

 오늘도 땀 흘리며 한 동작씩 자세를 가다듬어 본다.

 보지도 않고 짐작으로 써브를 넣기도 하고, 허튼 곳으로 뛰쳐나가도록 적당히 처내 버려 망신하는 일들이 어디 한두 번뿐인가?

 골치깨나 쑤셔댈 문제가 도전해 오는데도 못 본 듯이 눈감아 버리거나, 잘못 파악해 일을 더 일그러뜨려 놓는 일이 어디 한두 번뿐인가?

 뻔히 알고도, 보고도 힘이 못 미쳐 밀리거나 곤란한 일 겪는 경우가 또한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호흡을 하듯, 식사를 하듯, 자연스러운 모습이 우리의 몸 내음이면, 우리의 인격의 체취라면, 그것이 여유가 아닌가.

 얼마나 갈고 닦아야 멋진 폼과 자연스러움이 갖추어져 여유 있게 멋으로 몸에 배이게 될 것인지.

 현대인들에게 공통된 병리현상 중 하나가 여유의 상실에 있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급하고, 제 생각만 하고, 바쁘고, 할 을은 많은데 제대로 한일은 없고, 많은 소리를 듣고, 많은 말을 하는데 마음을 못 열고, 제소리만 지껄이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택시기사는 번쩍이는 눈을 더 자주 뜨고, 경적을 더 자주 울리며 기다리기 싫어 먼저 달리다 자주 부딪쳐 사고율 세계 1위가 여우의 상실에서 온 게 아닌가?

 문제의 파악도, 대처도, 또한 적당한 힘으로 밀어 붙임도, 여유를 지닌 채 할 수 있도록 많은 수련과 인내의 과정을 겪어야 할 텐데...

 정치현상도, 경제현상도 이젠 여유를 찾아가야 할 때가 온 것 아닌가?

 해외에 나가도 빨리, 빨리가 한국인의 대명사가 되어 어글리 코리안으로 타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각 단계별 훈련을 통해 이제부터라도 여유를 찾아야 한다.

 개인 뿐만 아니라 조직사회도 여유를 찾아야 한다.

 정부도 이젠 볼상사나운 조급함을 벗어나 역사적 안목에서 국가의 성장과 국민들의 복지증진을 찾아야 할 때인 게다.

 사업이라고 전 벌려 놓은 후 경제의 악순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다 여유란 여유를 몽땅 읽어버린 모습으로 하루가 끝날 때 소유할 시간이 그렇게 소중함을 느껴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언제부터 우리가 옛 성현들이 물려주었던 여유 있는 모습을 몽땅 상실하고 쫓기며 살게 되었는지.

 맑은 공기라도 실컷 마시고, 산림욕이라도 하며, 삶의 리듬을 되찾아 보고 싶다.

 여유를 되찾아야 막힌 가슴들이 트일 것 같은데

 그 여유가 우리 몸에 멋으로 배일 때까지 연단에 임하는 모습으로 머리를 조아려 가며 겸손하게 인내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