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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 여성 평화봉사단원의 봉사의 씨앗

문영은 2009. 3. 4. 02:40

한 여성 평화봉사단원의 봉사의 씨앗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의 언어 치료 및 청각 센터가 시작된 사연)

제 이야기가 아니라 글로리아 마모킨이라는 미국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1960년대 한국에 와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한 제 평화봉사단원 선배입니다.
두 달 전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주최한 평화봉사단원 모임 참석차 글로리아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그녀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글로리아는 1967년 서울에 도착해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학에서 그녀가 청각장애인들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전문 치료사로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에는 언어치료사라는 직업이 지금처럼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의사들과 만나 한국에서 청각장애인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세브란스 병원의 언어 치료 프로그램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 명의 의료진과 이야기를 나눌 거라는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글로리아는 의심스러운 표정의 의사들이 가득 모여 있는
강당에서 어린 청각장애 소년과 그 어머니와 함께 강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의사가, “미국에서는 청각 장애인들이 말을 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
한국에는 그런 기술이 없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한번 시연해주십시오” 라고 부탁했습니다.

한국에 온지 며칠 밖에 되지 않은데다,
아는 한국말로 별로 없었던 글로리아는 그 어린 소년이 “엄마”라는 말을 하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엄마”는 글로리아가 아는 몇 안 되는 한국어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 아이는 당시 7살 정도로 평생 한 마디도 해본 적이 없는 청각 장애인 이였습니다.

글로리아는 배운 모든 기술과 수단을 총동원해 아이가 말을 하도록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모여 있던 의사들이 그녀에게 별다른 기술이 없다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자
글로리아는 당황한 나머지 아이의 어머니에게 그만 가달라고 부탁했고 어머니는 마지못해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문에 다다른 바로 그 순간 아이가 “엄마”라고 외쳤고 소년의 어머니, 의사, 글로리아까지 모두 울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리아는 바로 그 다음부터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옛날 옛적 이야기를 왜 꺼냈을까요?
글로리아가 두 달전 제 관저에 왔을 때 여러명의 의사와 치료사들과 함께였습니다.
이들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언어 치료 및 청각 센터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의 이 센터는 청각 장애인과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세계 최고의 클리닉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의사들은 이제는 60대가 된 글로리아를 잊지 않고 오랫동안 연락해왔다면서
그녀가 오래 전에 한국에 씨를 뿌렸고 이제 그 씨가 자라 이렇듯 훌륭한 나무가 되었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이 이야기야말로 끈끈한 양국의 인적 교류와 한미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살아 있는 “엄마”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주한미국대사 스티븐스 씨의 한미 우호의 밤 행사 연설문 중에서



출처 : 청주북부교회
글쓴이 : 문영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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