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당신은 예배의 비밀을 아십니까?

문영은 2013. 9. 29. 07:16

당신은  예배의  비밀을  아십니까?

 


 

 

 

 

(요4:23-24)


   오늘은 영적 비밀 다섯 번째 예배의 비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네 주간에 걸쳐서 창조, 구원, 성령 그리고 교회의 비밀에 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교회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충성된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란 구약에 사용된 히브리어에서는 아바드(ר󰗈󰘼-service)란 말로 봉사, 섬김이란 뜻이 있고, 또 다른 언어로는 샤하아(ה󰖎󰚂-worship)란 말로 굴복, 경배란 뜻이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프로스퀴네오(πςοσκυνἐω)란 말로 절하다, 굽어 엎드리다란 말로 사용되고, 다른 말로는 라트레이아(λατρεία)란 말로 “다만 그 분만을 섬기라”는 말로 예수께서 사단의 시험을 받았을 때 마지막으로 선언했던 말입니다. 그 외에도 예배에 관한 용어들이 많이 있으나 종합적으로 정의해 보면 예배란 하나님께 드리는 최대의 경배(worship)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최상의 가치입니다. 예배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배 할 때는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한 최선의 것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거룩하고 존귀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타락한 추하고 더러운 인간을 만나는 것이 예배이으로 굉장히 거룩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질서한 모임이며 예배에는 거룩함과 동시에 무질서가 공존하는 신비가 예배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종합예술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배의 모델을 큰 유형으로 볼 때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구전시대에 족장중심으로 드려진 돌단 제사입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를 소개하면 모리아에서 드려진 아브라함의 제사를 들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성문 계시가 주어진 성막과 성전 제사입니다. 이때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이후입니다. 제사에 대한 구체적인 규범이 생겨 제사를 드리는 장소가 정해졌고, 회집하는 시간도, 집례 하는 제사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으로 흩어져 성전을 잃게 됨으로 회막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의식 중심의 제사에서 말씀 중심의 예배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옴으로 구약의 의식적인 제사가 폐지되고 신약의 영적인 예배로 전환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배를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거인들을 통해서 배워보고자 합니다.


말씀에 집중

   예배란 언약의 말씀에 대한 집중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서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길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22:2)고 했습니다. 여기 나온 번제(燔祭)란 신약 예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나타난 번제란 흠 없는 수컷으로 하나님이 열납(悅納-acceptable)하도록 송두리째 받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마음에 드는 최상의 것을 요구하셨고, 아브라함은 최상의 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집중하는 것을 배웁시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무엇에 집중하셨는가? 첫째,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집중했습니다. 교회를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총회라고 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사건 자체가 엄청난 사실임에도 이를 망각하고 예배드릴 때가 많습니다. 다음은 듣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렀으면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세히 들어야 하고, 정확하게 들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발람 선지같이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되묻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집중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시하심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아내와 의논하지 않았고, 그 아들 이삭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지시하신 말씀 그대로 나아갔습니다. 모리아에 이를 때에는 하인도 산 아래 남겨 놓고 정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왜냐하면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배에 왜 은혜를 못 받는가? 집중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을 망각하고 예배에 임할 때가 많습니다. 부름을 받았어도 그의 말씀하심에 귀를 기울여 청종하지 않고 건성으로 들을 때가 많습니다. 들어도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판단해서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지시하신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은혜의 감격

   집중한 예배에는 은혜가 넘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이제 다윗의 삶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가 언약궤를 시온성으로 모셔 오는 과정은 예배자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궤를 맨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배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삼하6:13-15)

 

   다윗만큼 언약의 말씀에 집중하여 살아온 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예배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언약궤를 시온성에 모셔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예배자가 누릴 감격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 앞에 겸손함입니다. 그는 일국을 다스리는 왕인데도 왕복을 벗고 에봇을 입었습니다. 본래 에봇은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릴 때 입는 옷인데 왕이 왕복을 입지 않고, 베 에봇을 입은 것은 왕이 다스리는 신분에서 섬기는 자 경배하는 자세로 낮아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무리와 하나 됨입니다. 왕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고 했습니다. 이날 그는 왕궁 보좌에 앉아 있지 않고 베 에봇을 입고 백성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부름 받은 공동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더불어 하나 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가 다락방에 모였던 사도들은 여인들과 어린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혀 힘썼습니다. 그때 불의 혀 같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한 열정입니다. 그는 언약궤를 모셔 옴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제물을 준비할 때도 살진 소를 골라서 준비했고, 의복으로는 왕복이 아닌 베 에봇을 입었고, 무리들 가운데서는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최선을 다한 삶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러한 예배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는 사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맞볼 수 없는 감격의 순간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이러한 예배의 감격이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음이 안타까움입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보고(寶庫)가 예배 속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예배의 감격을 매 예배 시간마다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13장 후렴에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이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는 예배 때마다 이러한 감격을 누립시다.


불의 역사

   그 다음으로 엘리야의 갈멜산 제단에 임했던 불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에 이와 같은 불이 임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 하옵소서 내게 응답 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18:37-38) 이로서 엘리야의 제단이 세상 이방 종교의 제사와 다른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제사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임했는가? 첫째, 그는 철저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지금 이 백성들의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옛날 그들의 조상들에게만 역사했던 하나님이 아니고 지금도 우리들 가운데서도 역사하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제사를 예비하신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불로 예비하여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신봉하는 무리들은 대상도 없이 맹목적으로 중언부언하였지만 엘리야의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진실 된 기도였습니다. 그 다음은 도랑을 파는 거룩한 구별함 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비극이라면 세상과 구별된 도랑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부름을 받은 공동체는 세상과 뭔가 다른 구별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거룩한 도랑이 있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다툼이나 이기적인 생각으로 인한 분쟁이 아니라 성결한 삶을 위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거룩함을 통한 분리입니다. 세속의 견고한 진들이 거룩한 성전을 유혹하지 못하도록 도랑을 파고 물이 넘치도록 부어야 합니다. 그때 하늘의 불이 임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핥아버리는 역사입니다. 하늘로서 임한 불은 제물과 나무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돌과 흙도 태우고 도량의 물을 핥아 버렸습니다. 너무도 확실한 응답입니다. 어떠한 시비도 걸 수 없도록 흔적을 남기지 않고 온전히 태워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불의 역사입니다. 불로서 죄악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립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에 하늘의 불이 임하려면 세상과 구별된 도랑이 있어야 합니다. 변화산상에 오른 제자들에게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만 주 만 바라보았을 때 하늘 세계가 열렸습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이러한 불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밀알의 강단을 통해 이러한 불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룩한 변화

   이제 마지막으로 신약 시대에 바울이 드린 영적 예배를 통한 변화된 삶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배를 통해 변화된 삶은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이제 우리가 드릴 예배는 구약의 의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과 생활을 통해서 드리는 산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세상의 풍속을 좇지 않고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his good).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고 더불어 살게 되었으니 그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좋은 옷을 입어도 기분이 좋고, 좋은 사람을 만나도 기분이 좋은데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부름을 받아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되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다음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즐거움을 주는 분이십니다(pleasing) 우리 하나님은 만남을 통해서 기쁨과 즐거움을 주십니다. 탕자가 돼지를 치면서 생각했던 아버지상과 집으로 와서 만남을 통해서 알게 된 아버지 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의 생각으로는 품꾼의 하나로 쓰임 받기를 바랐으나 직접 와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그는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여 기쁨과 감격을 평생 동안 누리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온전한 분입니다(perfect).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십니다. 그에게는 미완성품이 없습니다. 그분에게만 나아가면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없이 넘치게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손은  오병이어(五甁二漁)지만 오천 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를 거두는 빵공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우선 된 삶이라면 그분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 가치관이나 풍속을 따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먼저 아는 변화된 삶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했습니다. 이러한 삶의 영적인 변화가 예배를 통해서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이와 같은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말씀에 나오는 수가 성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난 이 여인은 주님이 구주이심을 알고는 물동이도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령(spirit)과 육신적으로 최선을 다한 진실(truth)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집중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속의 왕복을 벗고, 베 에봇을 입어야 예배의 감격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속의 줄을 끊고,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도랑을 파고 하늘의 불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예배의 감격을 누립시다.



 

//<![CDATA[ redefineLink(); setImageId('user_contents'); //]]>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