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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문영은 2015. 8. 26. 07:46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잠21:1-6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그의 걸작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공연되었고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중이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그는 늙고 병약하였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공연장에 입장하였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공연을 마쳤을 때 관중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손을 위로 치켜들고 외쳤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그 음악은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기 우리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태어난 존재입니다. 즉 인간 삶의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데 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게 바로 인간의 목적이란 말씀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5:10)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무슨 말로, 어떤 일로 창조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지 고민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 존재인 우리가 무엇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인생의 성공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까요?

1. 의와 공평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3절에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하였고,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1:1)하였습니다. 이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부당한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미워하시고, 의와 공평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저울눈 속이는 것은 도적질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제가 인천 연안부두에 교사들 회식자리 참석하고 부둣가에 나갔는데 조개를 파는데 통 가득히 담은 조개가 서울에서 보다 훨씬 싸게 팔아 사려고 돈을 주었더니 조개를 붓는데 통속에 칸막이가 있어 아주 적은 양을 받았습니다. 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 2Kg을 샀는데 집에 가져가서 저울에 달아보니 1.5Kg 밖에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내가 그곳에 가서 또 사겠습니까? 하나님은 공평이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사59:15)

 

윌리암 바클레이는 '의'란 사람과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져야 할 것을 드리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윤동주의 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마음과 행동'도 어떤 의미에서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자연히 공평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공평을 무조건적 평등, 차별 없는 평등으로 이해하는데, 이것은 무리한 이해라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공평은 '정의'를 전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마땅히 받아야할 사람이 받고 주어야 할 사람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 공평과 의를 상실했을 때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것도 인(仁)과 의(義)와 신(信)의 실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스라엘 평민들과 더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고 그들을 사랑과 공평으로 지도하길 원하셨고 지도자로서의 모범을 보이시길 원하셨지만 그들은 개인적인 기득권을 누리는데 만족하며 즐거워하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로부터 공동체의 비극이 시작됨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공의롭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성도가 공평하게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난한 자의 송사입니다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출23:6)

 

둘째는 저울과 추, 도량형입니다.(레19:35,36, 신25:15)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지니"(겔45:10)

 

셋째는 부하직원이나 아랫사람을 대할 때 공평하게 해야합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4:1)

 

넷째는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뇌물을 받으면 공평하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낯을 보아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을 인하여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잠28:21) '사람의 낯을 보아주는 것'은 차별 대우하는 것을 말합니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의 관계를 통해 연줄을 댄 사람이라 해서 보아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한 조각 떡을 인하여 범법하는 것'도 이와 한가지입니다. '한 조각 떡'은 적은 뇌물을 가리킵니다.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범법 행위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재판을 하거나 어떤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공평하고 의롭고 정직하며 적법하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 악인은 사람의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잠17:23)

 

세상 사람들은 "의롭고 공평하게 살면 재물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우리에게 "의롭고 공평하게 사는 지혜로운 자는 재물을 얻되 곳간까지 채울 정도로 많이 얻는다"고 가르쳐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의 인도함을 받아 의로운 길, 공평한 길로 행합니다. 이처럼 의를 행하고 공평한 길로 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2:9)

 

다음은 어느 무명 성도의 선행을 위한 고백입니다. "저는 이 세상을 단 한 번만 지나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행할 수 있는 선한 일과 친절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게 하옵소서. 제가 그것을 미루거나 핑계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는 제가 다시 이 길을 지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아침이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안개와 같은 인생을 우리가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길은 선한 길을 걸어가, 공의와 정직을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와 공평과 정직 안에 모든 선한 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길'이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행동 방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여 얻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공의롭고 공평하며 정직하게 살아야겠습니다.

2. 겸손한 사람입니다.
본문 4절에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하였습니다.
성 부러더 로렌즈 수도사는 어느 날 말썽이 많고 다투기를 제일 잘하기로 소문난 수도원 원장으로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그가 문제가 많은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 수도사가 서있는 것을 보고, "노 수도사가 왔구려!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를 닦으시오!" 처음 부임한 수도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전통이 된 모양입니다. 노 수도사는 이 수도원의 문제가 바로 여기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노 수도사는 "네! 그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곧장 식당으로 묵묵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노 수도사는 한 달, 두 달, 석 달, 접시를 닦았습니다. 멸시와 천대와 구박이 대단했습니다. 석 달이 지나서 감독이 순시차 왔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이 쩔쩔 매었습니다. 그런데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어디 가셨는가?" 수도사들이 대답했습니다. "원장님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깜짝 놀랬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즈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했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이 아연실색했습니다. 그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 노 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노 수도사의 극도로 낮아진 겸손의 도에 모두가 감동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그 수도원은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귀히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무슨 일이건 성취되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을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다고 선언하신 것은 교만이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마음이 가장 칭찬 받는 미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마음에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찾고 계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8-19)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시149:4)
"겸손한 자가 여호와를 인하여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빈핍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라"(사29:19)

 

신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저는 사도 바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겸손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요사이 어떤 사람들은 은혜를 좀 받으면 성자(성자)인 척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깨닫게 되고, 죄를 알게 되어 자연히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해 질수록 큰 은혜를 받습니다. 낮은 골짜기에 이슬이 많이 내립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산꼭대기 높은 곳에는 이슬이 내리지 못합니다. 겸손한 마음에 은혜의 이슬이 내립니다. 벼락도 가장 높은 곳을 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시고 교만한 자의 기도는 물리치십니다. 신앙의 모범이 될만한 사람이 자주 빠지게 되는 시험이 바로 영적 교만입니다. 내 신앙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말 잘하는 사람이나 재능 많은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안에서 겸손한 자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택하시고 귀한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시고 보여주신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굿간에 오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셨지만 군인도 없고, 돈도 없으셨습니다. 내각도 고기 잡는 어부로 구성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 때도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겸손입니다. 겸손해야 은혜를 받고 주님을 만납니다. 구원의 은혜는 나의 공로가 아니라 겸손하게 주 예수를 영접할 때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은혜를 못 받았지만 오히려 창기나 세리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접하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가 필요하다고 찾는 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나라를 떠나 이방나라로 건너가 이방 땅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와 은혜는 겸손한 자를 찾습니다.

 

겸손할 때 봉사할 수 있습니다. 겸손할 때 감사가 나옵니다. 겸손할 때 기쁨이 옵니다. 잠언 22장 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겸손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십니다. 영광을 주십니다. 생명을 주십니다. 시편22편 26절에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이 영원히 살지어다"고 말씀하십니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르고 언제나 샘솟는 기쁨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겸손이 생명입니다.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겸손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길이길이 겸손하여 만대에 축복 받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본문 5절에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라'하였습니다.
어느 농장 주인의 딸이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 사실이 알려진 후부터 가축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었습니다. 동물들은 회의를 열어 이 농장에서 주인에게 가장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희생제물이 되기로 했습니다. 먼저 황소가 나섰습니다. "나는 주인님의 농사를 짓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번에는 개가 말했습니다. "도둑을 누가 막는가. 내가 짖어대면 도둑이 도망간다." 고양이도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곡식을 훔쳐먹는 쥐를 잡는다." 닭도 목을 길게 뽑으며 자랑했습니다. "주인에게 새벽을 알리고 아침 식탁의 달걀을 제공하는 일을 누가 하는가." 그러나 한 동물만은 말 한마디 못한 채 눈물만 떨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게으른 돼지였습니다.

 

이 사회와 가정에 쓸모가 없는 인생은 비참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절대로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없습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항상 후회가 따를 뿐입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에 있어서 부지런함은 필요 조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은 '개미의 교훈'을 통해 우리에게 부지런히 살 것을 강조하였습니다.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꼭 지켜야 할 덕목 한 가지가 있는데 ‘근면’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1-30절에 보면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졸며 자다가 기름을 준비 못해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고 영육 간에 주리게 합니다.(잠19:15) 그리고 달란트 비유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주인으로부터 각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한 달란트를 받은 세 번째 종입니다. 처음의 두 종은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은 후 곧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마태25: 16-17절) 처음의 두 종은 자기에게 맡겨진 것으로 바로 일하기 시작했고, 세 번째 종은 그것을 땅에 묻어두고 주인이 올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대조적인 삶의 모습을 본 주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종과 두 번째 종을 향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을 향해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엄하게 꾸중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잠13:4)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잠15:19)
톨스토이는 '게으른 자의 머릿속은 악마가 집을 짓기에 알맞은 장소이다"라고 말했고, 벤자민 플랭클린은 "부지런한 사람은 만물을 황금으로 만들고, 무형의 시간까지도 황금으로 변화시킨다. 일하는 농부는 앉아있는 신사보다 존귀하다."고 하였고, 케네디 대통령은 말하기를 "최대의 행운은 자신의 전 능력을 들여서 일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죄악은 게으름과 권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근면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루어 가는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부지런히 일하며 사는 것을 생활 철칙으로 삼아야겠습니다.

4. 정직한 사람입니다.
본문 6절에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거짓을 미워하시고 속임이 없는 정직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미국 시민들의 영원한 존경을 받는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에 18세에 집을 나와 상점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그가 스무 살 되던 해에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일리노이주의 한 상점에서 일하던 때였습니다. 밤늦게 상점 문을 닫고 장부를 보며 결산을 하던 링컨은 장부보다 3센트가 더 많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날 낮에 한 부인으로부터 3센트를 더 받은 것이었습니다. 링컨은 거기서 한 시간도 더 되는 부인의 집을 찾아가 그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부인은 그 돈을 받고, "이것은 백금보다 더 귀한 3센트이군요. 당신의 정직한 마음은 반드시 참된 값으로 인정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라며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과연 링컨은 그 정직한 마음으로 미국의 운명을 바꾸었고, 미국의 대통령으로 세계 역사 속에 뚜렷이 남아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성품이 지향해야 할 덕목 중에 중요한 하나는 정직입니다. 현대사회의 총체적 위기는 서로 속고 속이는 양심의 상실과 부정직이 초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산 선생은 일찍이, "거짓이여 너는 이 민족을 망친 원수로다" 경계하였습니다. 세태를 탓 할 것이 없습니다. 마치 어두운 밤에 별이 더욱 빛나는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버리고 정직하지 않을수록 그리스도인은 더욱 정직해야 합니다. 이 시대 하나님은 정직한 그리스도인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직하신 분이시기 때문에(시25:8, 사26:7) 정직한 자를 기뻐 하사,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고(잠2:7) 거짓된 자를 미워하십니다.(잠12:22, 잠19:9) 그리고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며(호14:9), 정직은 성도의 의무입니다.(고후13:7)

 

미국에 "아딜로우"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정직합니다. 그곳에 사는 하메닝씨는 사료상과 농기구상을 경영하는데, 아침7시에 문을 열어 정오에 문을 닫고는 목장에 나가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목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마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창고 문을 열어 놓습니다. 그리고 누가 어떤 물건을 가져 갔는 지, 그리고 얼마를 받아야 할지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문에 걸려있는 장부를 보고 검토합니다. 하메닝씨는 이런 식의 장사를 여러 해 해왔지만 결코 물건을 도난 당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아딜로우" 마을 사람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을 결코 속이지 못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정직한 자가 복을 받습니다.(신6:18-19) 학교를 갓 졸업한 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어느 회사사장 비서로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통씩 걸려오는 전화가운데 절반 이상은 적절한 거짓말을 해서라도 사장실로 연결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견디다 못한 그 여성은 어느 날 사장에게 사직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은 며칠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하고는 며칠 뒤에 그 비서를 경리담당 중역으로 발령 내렸습니다. 사장은 그 그리스도인 여성의 정직성을 높이 산 것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정직한 것은 바보스러운 짓이라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직은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정직한 사람은 후손에게까지 복이 있습니다.(시112:2) 영국선교사로서 아프리카 선교에 크게 공헌한 리빙스턴 집안은 평민출신으로 귀족적인 피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으나 그의 혈관 속에는 천사도 부러워할 만한 귀한 것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경건한 신앙과 정직한 정신입니다. 그의 조상이 죽을 때 자식들을 불러놓고 "자녀들아 정직하라" 라는 한마디를 유언으로 남긴 이후 리빙스턴 가의 가훈은 정직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귀히 알고, 자자손손 지킴으로서 이러한 가정에서 리빙스턴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태어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하며, 의와 공평을 행하고, 겸손하며,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시147:11) 여기에 축복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의와 공평을 행하고, 겸손하고, 부지런하고, 거짓이 없는 정직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주님은 어떤 사람을 기뻐하실까요?

본문: 마태복음 20:20- 28

1)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
오늘 본문 바로 앞부분인 17-19절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일만에 살아나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아주 어두운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그 분위기를 깨고 한 사람이 치맛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본문 20-21절 세배대의 아들의 어미, 즉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주님께 절하면서 자기의 두 아들들을 주님 나라의 좌우 정승으로 삼게 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오냐! 알았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22절 말씀을 보면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약삭빠른 태도로는 복된 자리를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누가 주님의 우편에 앉습니까? 약삭빠르지 않고 우직하게 충성하는 사람이 주님의 우편에 앉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약삭빠른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약삭빠른 마음은 약삭빠른 도둑보다 훨씬 무서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약삭빠른 생각을 하면서 "내가 참 영리하구나! 내가 잘 살 거야!"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자기에게 사기 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사기치는 것보다 자기가 자기에게 사기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약삭빠른 것'은 '영리한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 약삭빠른 사람은 잘 살 것 같지만 더 못 삽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약삭빠른 사람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렇게 살면 인간적으로는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주님의 마시려는 잔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십니다. 소금이 없으면 음식이 부패하는 것처럼 사람에게 적절한 십자가가 없으면 그 영혼은 반드시 부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마련하신 잔을 기쁘게 마실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습니다.(No Cross, No Crown).
우리는 십자가는 지지 않고 주님 우편에 앉을 생각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기 위해서 너무 핑계만 대고, 너무 엄살만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자기 욕심만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쁘게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3) 성령 충만한 사람
본문 24절 말씀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나머지 10제자가 두 제자에게 심히 분노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성령 받기 전의 제자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성령 충만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마음이 넉넉하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살면 "누가 크냐?"고 다투게 되지만 성령 충만하면 나보다 남이 앞서도 괜찮습니다. 때로 남이 큰 실수를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넉넉하게 대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밝은 얼굴이 되고,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되고 지나친 염려와 근심이 없고 한에 맺혀 사는 것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심하게 매를 맞아도 다음날에는 환하게 웃고 놉니다.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때리면서도 아이들은 때린 후에는 스스로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우울하게 되지만 정작 맞은 어린아이들은 하루만 지나면 벌써 잊어버렸습니다. 어른이 그렇게 맞았으면 한이 맺혀서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금방 잊어버립니다. 어린아이들은 어제 심하게 싸우고도 오늘 친구가 됩니다. 어른들은 그렇게 사우면 오래 맺히지만 어린아이들은 어느새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친해집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성령 충만의 세계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떤 이유를 대든지, 어떤 변명을 하든지 원한 맺힌 감정을 품고 사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삶이 아닙니다. 아무리 대단한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 같아도 마음속의 한과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감정 충만 및 자기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충만한 것이지 결코 성령 충만이 아닙니다. 오늘 이 아침에 모든 맺힌 것, 모든 섭섭한 것을 다 버리고 "그것도 내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십자가였다. 그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넉넉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처럼 성령 충만한 삶을 살 때 하나님은 그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4) 종처럼 섬겨주는 사람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이 서로 높아지기를 원하고, 그것 때문에 시기하고 분노하고 다투는 모습을 주님께서 물끄러미 보면서 많이 마음이 상하셨을 것입니다. 이제 곧 십자가를 지는데 아직도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본문 26-2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 앞에서 권세를 부리는 일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하는 일이다. 너희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한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남을 섬기고 종이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축복 많이 받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축복 받고 그 축복을 남을 위해 쓰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오해하면 사랑이 오기나 집착으로 바뀌어 영혼을 황폐하게 만들고 결국 축복이 저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만 높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높임 받으려고 하면 공동체의 하모니가 깨지고 결국 자기 손해입니다. 그러나 남을 섬겨주면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 자기에게 축복이 주어집니다. 모든 삶과 인간관계가 다 그렇습니다. 받으려고 하면 결국은 손해뿐입니다. 그러나 주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무수한 것을 얻게 됩니다. 왜 사람들에게 미련이 있습니까?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받으려고만 하면 미련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는 사람은 미련이 없습니다. 더 주는 사람은 더 미련이 없습니다. 다 주는 사람은 미련이 결코 없습니다. 그처럼 미련이 없는 것이 보람이고 행복입니다. 누구에게 행복이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주고 주고 또 주고 자기 몸까지 주려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연약한 사람을 잘 돌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높은 자리다툼이 이번 한번뿐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 얼마 전에도 갈릴리에서 주님은 제자들이 "누가 크냐?"고 다툴 때가 있었습니다(막 9:30-37). 그때 주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그처럼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도 잘 영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탁 무시합니다. 없는 사람을 무시할수록 축복은 하나씩 깎일 것입니다. 반대로 없는 사람을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섬겨줄수록 축복은 하나씩 쌓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주느냐에 따라 우리의 앞날의 축복을 저울질하실 것입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입니까?
0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0 나의 생애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인가?
0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인가?
0 나는 진정 세상 무엇보다도 하나님만을 더 사랑하는가?
0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불살라 바칠 수 있겠는가?
0 나는 주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심령이 있는가?
0 모든 수고는 내가 하고 모든 영광을 주께로 돌릴 수 있겠는가?
0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세상 사람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3. 예화(1): 세 종류의 인간

미국 컬럼비아대 총장을 지낸 니콜러스 머레이는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이다. 세상의 중요한 일은 언제나 이 소수 몇 사람이 하게 된다. 그래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미국을 이끌어갈 700명을 달라고 기도했다.둘째는 일을 그르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어느 사회나 일을 그르치는 부류가 존재한다. 토인비 교수는 몇 사람의 정신병자 때문에 온 인류가 망한다고 했다. 몇 사람의 독재자, 사기꾼, 아첨자, 이기주의자들이 그 부류이다. 세번째 사람은 잘못된 것을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부류다. 분명히 잘못된 것을 알고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하는 사람, 나 몰라라 하는 이기주의자들 때문에 세상이 망가지고 있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도 이 세 부류중 한 사람일 것이다.

* 예화(2): 성결한 지체

중국 교회의 지도자 워치만 니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기차 여행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동석한 세 사람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카드놀이를 하기로 하고 그 형제에게 함께 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그러니까 세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카드놀이 할 줄 모르십니까?"라고 묻더랍니다. 형제가 조용히 웃으며 "할 줄은 알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손은 두었다가 무엇을 하시게요?" 즉시 돌아온 반문에 그 형제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손은 제 손이 아니라서요. 달리 할 일이 있어서요." 세 사람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자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자기가 최근 예수 믿게 된 동기와 신앙을 간증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자신의 몸이 주님의 몸이 되고 자신의 손도 주님의 손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주님의 손으로 카드놀이 하는 것을 그분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 같아 사양한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대답은 무엇보다 성경적인 거룩함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거룩은 무엇을 안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물론 손으로든 입으로든 죄를 짓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손으로 입으로 몸으로 하나님의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간과 존재를 하나님의 일에 드려 보십시오. 죄를 지을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가운데 삶의 진정한 기쁨을 느껴 보십시오.

4. 찬송: (508장) 주와 같이 되기를

1. 주와 같이 되기를 내가 항상 원하니 온유하고 겸손한 주의 마음 줍소서 세상에서 우리가 나그네로 있을 때 주의 형상 닮아서 살아가게 합소서
2. 비록 작은 새라도 잊지 않는 나의 주 나와 함께 계시어 나를 돌아 보소서 맘이 깨끗하기를 내가 항상 원하니 악한 맘을 버리고 살아가게 합소서
3. 주와 같이 되기를 내가 항상 원하니 평화로운 주 곁에 편히 쉬게 합소서 주 은혜로 거듭나 말씀 위에 굳게 서 영원 무궁하도록 주와 함께 살리라 아멘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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