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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다니지 말고 교회가 되어라.

문영은 2015. 12. 22. 20:10

      글/이보문 목사(mun5682@hanmail.net)

 

오늘 날 교회는 화려하고 다양하게 연출하는 극장처럼 되어가고 있다. 대형 스크린으로 성경 찬송가가 필요 없게 만들고 동영상으로 설교 중간에 삽입되어 관람하게 되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파이프 오르간으로 압도하는 음악이 동원되고 있다. 진정한 관객은 교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인데 말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연기자들은 목회자나 직분자들이 배우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배에 동원되어야 할 연기자들은 예배에 참여하는 교인인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에 의해 예배의 중요 직책을 맡은 이들로 주객이 전도되어 버려 예배의 원형과 본질이 상실되어 버렸다.

 

예배를 임하기 전에 관점을 달리 하지 않으면 교회 안에 있는 나의 존재성을 상실하게 된다. 먼저 나를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먼저 위를 올려다봐야만 예배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과 나의 형상이 하나로 된 것을 잊지 않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삼일 동안 무덤 안에서 함께 장사지내었다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엡 2:1~6) 위를 찾고 바라봐야만 한다. (골 3:1) 그 이유는 그 다음에 우리가 반드시 앉아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 옆에 앉게 되는 은혜의 특권이다.

 

이것이 바로 위를 바라보는 관점을 갖는 신앙의 기초며 뿌리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나와 비슷한 사람이 모이는 곳, 교인들, 목회자로 인해 내 취향에 맞는 교회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편승하는 교회는 취향을 맞게끔 설교나 예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나의 유익을 위해, 나의 편리함을 위해, 나의 스타일에 맞는 교회를 찾고 있는 부류들이 있다. 이것은 교회가 아니라 클럽에 불과하다. 나의 취미를 표출할 수 있는 곳, 나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곳, 나의 취향에 딱 맞는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양의 교회가 즐비하다는 것이다.

 

교회는 본질상, 나의 취미를 발휘할 수 없어도, 나의 유익이 없어도, 나의 편리함이 없어도, 나의 스타일이 전혀 맞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교회는 단순히 교회를 다니기 위한 교회가 아니라 내가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오가잡탕이 모여진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 내 입에 맞는 사람만 모이는 곳이 아니다.

 

내 눈에 거슬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이 모여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만들어졌다면, 주님과 한 몸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되었다면 괄시해서는 안 된다. 칭얼대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는 아줌마, 지팡이를 짚고 어렵사리 오시는 노인네들, 머리에 염색하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오는 청년들

 

약간 맛이 간 사람들도 올 수 있는 곳이며 세상의 죄를 다 뒤집어쓰고 온 사람들 투성이기에 사기가 난무하고 각종 범죄들의 온상들이 모인 것처럼 보여도 진정 주님을 만나고 한 몸이 되어 연합된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하게 되는 곳이 바로 교회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교회가 된 사람도 있다.

 

아직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다니는 부류들이 많이 있어 교회가 된 존재들이 눈을 비비고 찾아도 너무나 극소수라는 게 문제다. 예수님과 하나님 그리고 내가 한 몸이 되었기에 내가 교회며 성전이라는 게 몸속 깊이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이다. 무슨 운동이라도 기본기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교회가 아파하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파하신다. 오늘날 교회가 너무나 많이 아프다. 그래서 예수님도 많이 아파하신다.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서로 찢어지고 깨지고 분열되어 예수님의 몸을 찢어 놓고 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로만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찢어 서로 가져간 것처럼 찢고 있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현현하는 유기체적인 공동체다. 예수님에게도 인성과 신성이 공존하는 것처럼 교회가 된 내 안에도 인성과 신성이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갈등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교회를 다니는 존재들에게서 느끼는 이중적인 인격이 오히려 더 드러나게 되어 있게 마련이다.

 

교회가 예수 주식회사도 아니며 세상 사람들과 동떨어진 이상한 그룹도 아니다. 그런데 주식회사처럼 그룹회사처럼 움직이고 있어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고 있다. 과거에는 교회가 세상을 염려하고 걱정했는데 이제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면하고 있는 세상을 향하여 교회는 관점을 달리해야 한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관점을 바꿔야 한다. 교회를 다니지 말고 교회의 근본이신 예수님과 한 몸으로 연합되어 교회로 존재되어야 한다.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이 건물이나 예배당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반석이라고 하는 하나님과 예수님 위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바로 내가 주님과 한 몸으로 연합하여 세워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금석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전무후무한 신앙고백을 하게 된 것이 신앙의 지식이나 연륜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주와 합한 존재가 되어져야만 진정한 신앙고백이 되는 것이다. 입으로만 하는 신앙고백이 아니다. 입으로만 다니는 교회가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