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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다시 배워보세

문영은 2017. 5. 8. 00:06

 어둠을 가르며 세 시간을 달려왔다. 운무를 헤치고 꼬불꼬불 산길을 헤집어 속리산에 도착했다.

 출출한 속을 버섯 국밥으로 채우니 나른해진 몸은 뒹굴고 싶어만 한다.

 서로들 얼굴을 보니 등산 시작 전부터 겁먹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참으로 오랜만의 등산이라서 즐거운 대화가 끊어지질 않는다.

 그 동안 바쁘다고 아내도 친구도 내 팽개친 지가 얼마였던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속리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자 탄성이 절로 솟는다

 볼 때마다 오를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모습에 감흥이 이는 까닭은 무엇인고?

 가벼운 배낭에 간단한 복장임에도 등골에서는 구슬 땀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많은 무리들 속에 끼어 오르건만 유난히도 시선을 끄는 한 쌍의 연인이 있었다.

 

 미모의 여인과 잘 생긴 청년이었다.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서로 시샘을 하는지 바라보고는 한마디씩 나누곤 했다.

 불구의 몸인 채로, 의족의 다리를 가지고도, 빼어난 미모와 그 밝음과 힘차고 아름답고 행복한 사랑을 하고 있는 모습이 장하게만 보인다.

 등에 엎여 계단도 오르고, 짬짬이 사진촬영도 하고, 덜 가파른 길에서는 손잡고 오르고, 끊이지 않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행복 그대로 였다.

 

 우리들의 젊은 날의 행복은 이만 했을까?

 성한 몸으로도 등골에서 흐르는 땀 방울과 가빠오는 숨결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인데..

 불구의 몸으로 가파른 등산길을 오르는 그 연인들의 고통은 얼마만 할지?

 그들의 힘든 기색은커녕 명랑하고 행복하기만 하다.

 

 사랑의 힘일까?

 그 사랑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우리네 사랑 놀이는 곶감 빼먹기 놀이 일 수인데..

 서로 없는 다리가 되어주는 이들의 사랑 놀이는 사랑의 진면목이 아닌가?

 쉬는 짬에 카메라에 잡히는 모습도 사랑이요, 휘몰아 치는 숨결도 사랑이요, 머리 맞대고 속삭이는 모습도 사랑이 아닌가?

 

 흔들바위에 올라서니 솟구치는 바람결이 온몸을 휘 감는다.

 층층이 다른 색깔을 띤 가을 속리산은 커다랗게 타오르는 불꽃 그대로의 모습인데..

 꽉 막힌 사고의 틀을 헤집고 나오지 못하여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나날들.. 오염된 공기의 돔 속에서 문명의 혜택을 노래하던 어리석은 나날들..

 자연 속에 한 잎 낙엽 되어 뒹굴며 사랑의 참모습도 보고, 자연의 신선함도 맛보고, 큰 질서 속에 흐르는 한 줄기 냇물의 물살 소리도 들으니 시심이 절로 솟는다.

 

 이곳에서는 돈도 명예도 굴욕도 욕심도 아무 소용이 없고, 다만 내뱉지 못했던 깊은 찌꺼기 숨을 토해 내기만 하면 족하지 않은가?

 한 잎 낙엽이 되어 보자 구나. 그리고 따스한 햇빛을 노래해 보자 구나!

 멋진 연인들처럼 서로 얼굴 바라보며 티없는 웃음을 주고 받자 구나!

 

 나는 너의 다리가 되어 주고, 너는 나의 팔이 되어 주고,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 보자 구나!

 아름다운 사랑을 다시 배워보자 구나!

 한 잎 낙엽이 생명의 흐름인 것을..   무리를 하며, 억지를 부리며 애달아 하지 말자구나.

 돌아오는 길에 뜨거운 온천 물에 몸을 담구니 뼈마디의 피로가 절로 풀리며 덮여오는 눈 가죽 위로 사랑의 진면목의 모습과 하루의 일정이 주마등 되어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