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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요

문영은 2017. 5. 12. 10:58

 하루 종일 온 길을 분주하게 헤집고 다니는 택시 기사들과 차 속에서 짬짬이 나누는 대화는구수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들은 피곤을 잊은 채 열심히 일 하고 있는 일 벌 들이고, 생존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촌각을 쪼개어 쓰고 있는 개미 들이다.

 잠간 신호 대기 중인 데도 차들이 쭈욱 밀린다. 이젠 시골 에서도 초록색 신호를 보고서도 다음 초록색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운전석 앞부분 오른쪽 켠에 보기 좋게 꽃아 놓은 사진에 시선이 머문다.

 잘 생긴 남자 아이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린다.

 “오늘도 무사히! ! “

 “참 잘 생겼군요. 아들이지요?”

 “,”

 “이 사진 자주 보시지요?”

 “네 자주 보게 되지요.”

 “보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니까?”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참지요.”

 “그래요. 고맙군요.”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별의 별 사람을 다 보게 되는 데 참지 않으면, 열 불 날 일이 자주 있지요.


 남상용씨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 라는 시중에 있는

 “왜 사냐 건, 웃지요.” 하는 시 구절이 머리에 머물고 있는데, “

 “어떻게 사냐 건, 참지요,” 하는 말로 가슴에 와 닿는다.

 참지 못하거나 참지 않으려 한다면 차선을 이탈해 달리는 차와 다른 바가 없다.

 참아야 하는 이유는 생각해 볼수록 분명해진다.


 너와 나의 관계 중 나도 옳고 너도 옳은 경우가 가장 바람 직 하지만, 그 외에도 네가 옳고 내가 그른 경우와 네가 그르고 내가 옳은 경우와 너도 그르고 나도 그른 경우가 있지 않은가?

 산술적으로 보면 각 각의 경우가 25%가 되어 비슷할 것 같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아 너도 옳고 나도 옳은 경우와 너도 그르고 나도 그른 경우는 얼마 되지 않고, 나와 나중 둘 중의 하나가 옳고 다른 하나는 그른 경우가 더 많아 소위 다이아몬드 형의 모습으로 되어있지 않던가?


 따라서 둘이 모두 같은 경우만 고집하고 산다면 얼마나 답답한 모습일 것인가?

 그래서 참는 게다약간은 어색할 때도 둘이 모두 그르지 않다며, 의견 차이에 의한 갈등을 간직한 채

참는 게다. 언젠가는 그른 경우가 밝혀져 용납되리라 믿고 참는 게다. 설령 이해와 용납이 안 된다 하여도 의혹의 눈 빛을 신뢰의 눈 빛으로 바꾸어야 하는 게다.

 서로 죽일 놈이라 말하지 않고, 서슬이 퍼런 눈빛으로 보지 않고, 포근한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용납하며 사는 게다.


 잡보장경에는 돈 들이지 않고도 베풀 수 있는 자비를 색시” “ 안 시” “언사 시” “심 시” “ “신 시” “상좌 시” “방사 시로 말하고 있지 않던가?

 즉 얼굴의 빛이 눈빛이 말씨가, 마음가짐이, 몸으로 섬김이, 자리의 권함이, 주위의 청결이, 모두 보시라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평범한 이야기지만 선현들도 이의 실천이 어려웠음을 이미 갈파했던 것이 아닐까?

 노력의 도는 못 쫓아 갈지언정 우리도 노력을 해 볼 수는 있지 않은가?


 “어떻게 살 것인가?”

 “참으면서 살지요.”

삶을 어떻게 사 것인가 하는 질문에 명답임에 틀림이 없다.

즉 삶에 대한  “Know How” 의 하나는 참지요일 게다.

억지를 부리며 살다가 울화가 치밀어 압축된 가스가 폭발하듯 터트릴 필요는 없다.

약간은 골을 쑤시는 일들이 있을지라도 밝게 웃으며, 흘러간 옛 노래를 대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참아보는 게다.


몸은 약간은 더 고달프고, 힘이 들 지라도 가슴 펴고 큰 숨 쉬고 서로를 품어 내는 게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 서로가 서로의 가슴 속에 파고 들어 오도록 참아보는 게다.

삶의 지혜가 바로 참는 것임을 또 다시 생각해 본다.

그렇다. 분명 그러하다.

왜 사냐 건?”  “웃지요

어떻게 사냐 건?” “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