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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젊은 교우를 하나님의 품에 보내드리며

문영은 2006. 5. 6. 08:52

Name  
   박신일 
Subject  
사랑하는 명하를 주님 품에 드리며,

저는 여느 사람처럼 맑고 깨끗한 눈만 아름다운 줄 알았습니다.
하얗고 깨끗한 눈을 보면 참으로 순수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검은 대륙에서 섬기신 한 선교사님을 만난 이후부터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만날 때마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말씀을 읽고 기도와 더불어 사는 분인데
늘 눈이 피곤한 듯 붉어 보였습니다.
육신의 눈으로만 판단하면 깨끗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을 못 주무신 것일까?  몸이 그렇게 피곤한 것일까?
그러나 한 번도 여쭙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삶을 알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투명한 삶을 살려고 하는지
얼마나 믿음으로 철저하게 살려고 하는지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 분의 눈은 늘 붉었습니다.

그 분은
단 한 번도 과거에 말라리아 때문에 고생한 탓이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달리기 때문에 피곤하여 그렇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분을 만나면 가슴이 뜨거워지곤 했습니다.
주님의 눈물을 머금고 있음을 보곤 했습니다.
교회를 향한 그 분의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충혈된 눈이 아름다운 것임을 알았습니다.
맑은 어떤 눈동자보다 귀한 눈임을 알았습니다.
육신의 눈을 아름답게 만들려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눈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그 분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명하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 소중한 하나님의 딸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잠자는 어른들의 영혼을 고난의 몸을 통해 흔들어 깨워준
우리 모두의 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미래였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 모두는 비로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하를 살려주신다는 확신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명하가 벌떡 일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우리들의 믿음과 기도의 공로를 인정받기를 바랬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서도 우리는 우리들의 의를 드러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오직 은혜로 모든 일을 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만할 수 없도록 더 철저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도록
우리를 흔들고 또 흔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어있으려면 명하는 더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겸손케 되려면 명하는 더 아픔을 당해야 했습니다.
지난 화요일,
우리는 믿었으나 하나님은 명하를 천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날 저는 명하는 살았다고 기도 중에 말씀하신 약속을 다시 기억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명하를 이처럼 고생 끝에 육신적으로 다시
살도록 허락하지 않으시고 고난 중에 천국으로 인도하셨는가?
이것이 하루 종일 병원에서 곱씹었던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위하여
목회자들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담임목회자인 저를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가족들을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우리의 소망과 미래로 여기며 기도한 명하를
고통과 죽음을 통과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명하의 삶과 고통과 희생의 가치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하나님의 강렬한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하는 지금도 우리 안에서 믿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의 말씀처럼
아벨은 더 나은 믿음의 제사를 드렸으나 죽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명하는 우리 교회 안에 살아있는 메신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지
어떻게 믿음생활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명하를 하나님 품에 보내며 주셨던 너무 분명한 메시지들이 있었습니다.
그 메시지들은 앞으로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명하의 마지막 병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것은 명하의 얼굴을 통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맑은 눈만 아름다운 것인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얀 얼굴을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명하는 하얗지 않았습니다.
상처도 있었습니다.  
치열한 고통과의 전쟁을 믿음으로 겪은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나 명하는 아름다왔습니다.
그렇게 평안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힘든 고통을 겪다가 주님 앞에 갔음에도 평안을 지녔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것, 그것이 무엇인 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돌에 맞아 순교했던 스데반 집사님의 얼굴은 피투성이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명하는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명하는 건강함으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하여
고통을 지나, 죽음으로 희생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았습니다.
이제 그 메시지를 간직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명하를 살리셨습니다.
우리들 가슴 안에 살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명하를 육신으로 살려주시기를 기도했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했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람이 아니라
우리들을 깨우시기 위하여 주님은 명하와 함께 고통의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명하를 통해 깨어나는 우리들의 믿음과 기도가 잠시가 아니라 평생토록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자신들을 정죄하는 자리에 서지않고
회개함으로 정결함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워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명하는 우리 교회에 너무 소중한 딸이었습니다.

천국의 귀한 자리에 앉혀 주시고
그 머리에 용사의 면류관을 씌워 주십시오.
지난 20여년의 목회동안 가장 소중한 목회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명하의 고통과 삶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